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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나은미래] 29년간 1000만 그릇 밥 나눈 최일도 목사, "밥이 답이고 밥이 평화"
2017-06-02

29년간 1000만 그릇 밥 나눈 최일도 목사, "밥이 답이고 밥이 평화"

2017.05.29


청년은 몰랐다. 모두가 ‘그’를 외면할 것이라고는. 청량리 역 앞에 쓰러져 있던 노숙인은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 누워 있었다. 청년 또한 그를 못 본 척 춘천행 기차를 탔다. 

그러나 늦은 저녁 청량리 역에 돌아온 청년은, 역에 그대로 쓰러져 있는 노숙인을 보고 인생 최대의 ‘참회’를 했다. 

그는 노숙인에게 라면을 끓여 주기 시작하며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아낌없는 나무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29년 후, 이제 청년은 ‘밥 주는 목사’, ‘노숙인들의 목사’로 유명한 최일도(60)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이하 밥퍼) 대표가 됐다. 

머리는 히끗, 주름살은 늘어났지만 밥퍼에 대한 열정만큼은 청년 최일도 못지않다.

1988년 11월 최일도 목사가 시작한 밥퍼가 올해로 29년째를 맞았다. 머물 곳도, 돌봐줄 가족도 없이 한 끼의 식사가 절실한 이들에게 최 목사와 다일공동체가 건넨 밥 한 공기는 

어느새 1000만 그릇을 넘어섰다.

29년간 그가 걸어온 ‘밥퍼’의 길 처음과 중반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지난 12일 다일천사병원에서 최일도 목사를 만났다.

 

◇“신앙과 삶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더라”

최일도 목사의 첫 밥퍼 장소는 청량리 역이었다. 시작은 곤로로 끓인 양은냄비 라면. 역 주변에 있는 노숙인들은 그가 대접한 라면 한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숙인 몇 명에게 끼니를 제공하는 것에 만족했던 그는 한 노숙인의 한마디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당시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독일 유학을 준비했던 그는 이런 일은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청량리역 한쪽 구석에서 라면을 끓여주고 있는데, 무의탁노인들 속에 철학과 중퇴생이라는 젊은 알코올 중독자가 끼어 있었어요. 

그가 갑자기 ‘삶은 무엇이냐.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누구 책임이냐. 당신은 ‘예정설'(인간 운명은 하나님의 뜻으로 정해짐)을 믿는 목사니 알 것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때 라면을 먹던 노인이 그 친구의 뒤통수를 치며 ‘삶은 라면이잖아’라고 했습니다. 그날밤 전 한숨도 못 잤어요. 밥퍼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는 “그의 한마디로 인해 삶과 신앙은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면서 “그 이후부터 밥퍼를 내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스타 목사다. 

다일공동체와 밥퍼나눔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세상은 그의 나눔을 주목했다. 하지만 그 여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최 목사는 “사실 노숙인들을 만나 밥을 나눠주고 

후원금을 모금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면서도 “의외로 지도자들을 설득할 때 가장 힘들었다”고 그간의 소회를 털어놨다.

 

 


 

“예전에 코레일 사장, 지금은 퇴임한 그분이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들을 내쫓을 방법이 없다면서 저보고 그 일을 해달라고 요청하더군요. 기가 찼어요. 

노숙인들의 목사라 불리는 제게 노숙인들을 거리로 내쫓으라니. 불같이 화냈죠. 이들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인데 당신은 뭐가 그리 잘나서 노숙인들을 이리 함부로 대하냐고요. 

이후로도 이런 항의를 종종 받았습니다. 길거리에서 밥을 받아먹는 행위가 소위 ‘선진국스럽지 못하다’고 말이죠.”

하지만 비온 뒤에 땅이 굳듯, 위기는 곧 기회로 찾아왔다. ‘역 광장에서 밥을 먹지 마라. 남한에 거지새끼가 산다고 김일성만 좋아한다. 안 보이는 데서 줘라.’ 

밥퍼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한 정보과 형사가 찾아와 최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을 청량리 역에서 근처 야채시장 쓰레기더미 옆으로 쫓아냈다.

그러나 하늘은 그의 편이었던 걸까. 시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평소보다 갑절인 80여명의 노인이 몰려왔고 이후 밥퍼는 탄탄대로의 길을 걸으며 국내 최초이자 대표 무상 거리 급식 운동이 되었다.

“급식을 끝내고서 리어카를 밀고 가는데 상인들이 무·배추·생선을 올려놓았어요. 저희 집에 쌀 포대도 갖다놓았고요. 밥을 해주는 광경에 시장 상인들이 감동을 받은 것이지요. 

두 달간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또 이 소식을 듣고 각 교회에서 돌아가며 쌀과 봉사 인력을 담당하겠다고 했어요. 이렇게 밥퍼는 시작돼 수천 교회와 수만 명이 참여하는 운동이 됐습니다.”

 

 

◇50만이 나눈 사랑, 1000만 그릇 되어 돌아왔다

 

지난 5월 2일 다일공동체는 밥퍼 나눔 운동 1000만 그릇 돌파를 기념해 서울 동대문구 황물로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오병이어의 날’ 행사를 열었다. 

본부 앞 공터에 마련된 의자 1000석은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임성빈 장로회신학대 총장, 배우 김보성씨 등 축하객들과 밥퍼 자원봉사자들로 가득 찼다.

 

 

최일도 목사는 다일공동체 밥퍼 나눔 운동 1000만 그릇 돌파 공로를 봉사자에게 돌렸다. 아낌없는 후원과 봉사를 보내온 봉사자들 없이는 1000만 그릇 돌파도 없었다는 것. 

그동안 밥퍼를 거쳐간 자원봉사자는 50만명. 초기 밥퍼부터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쭉 함께한 자원봉사자만 200명이 넘는다.

그는 “얼마 전 27년 간 봉사한 할머니와 그의 딸이 찾아왔는데, 할머니와 따님은 “내가 아프면 나의 딸이 봉사를 이어갈 것이며, 

딸이 봉사를 못하면 손녀가 대를 이어 봉사할 것이다”라고 했다”면서 “이런 진정성을 가진 봉사자들이 지금의 밥퍼나눔운동을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별히 그는 밥퍼 지원을 받았던 수혜자들이 밥퍼 봉사자가 되는 ‘나눔의 선순환’에 크게 감동하고 있다. 

밥 한 그릇으로 전한 사랑이 수백 배 자라난 기분이란다. “얼마 전엔 밥퍼 배식을 받던 노숙인 할아버지가 봉사자로 탈바꿈하셨는데요. 

이제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하신데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쓸 돈도 차곡차곡 마련해 놓고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이것이야말로 밥의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희망을 만드는 건 많은 돈도 번듯한 직업도 아니예요. 따뜻한 말과 밥 한끼 그리고 관심입니다.”

 

 

최 목사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바로 다일공동체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나눔을 행하는 일. 그는 2010년 다일교회 담임목사직에서 은퇴하면서 사회봉사 활동에 전념하기로 했다. 

정년을 11년이나 남기고 내린 파격적 결정이었다. 그는 퇴직금 4억원과 전세 보증금 2억원을 받았으나 퇴직금 4억원은 다시 교회에 헌금했다. 

교회는 이를 ‘최일도 장학기금’으로 조성했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애쓰는 학생을 위해 써 달라는 최 목사의 뜻에 따라 사용하기로 했다. 

최일도 목사는 “밥퍼가 그리고 다일공동체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면서 “봉사자들이 나눠준 사랑을 이제 자신이 갚아나가야 할 때”라고 했다.

 

 

◇“밥이 평화고 밥이 답이다"


 

29년 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밥을 나눈 다일공동체는 이제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나눔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현재 미국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탄자니아 우간다 등 

10개 국가에 17개 분원을 열어 빈민구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와 함께 어려운 이웃의 생애 전반에 걸쳐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스톱 종합복지시설’ 건립도 추진한다.

최일도 목사는 밥퍼의 다음 목표를 국내와 해외를 넘은 ‘평화’라고 규정했다. 2년 전부터 추진해온 ‘밥 피스 메이커’ 사업이 그 일환이다. 

‘밥 피스 메이커’는 일종의 평화 통일 퍼포먼스로, 최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은 판문점 근처에서 밥상을 차려 놓고 ‘남북한 병사들이 밥 한끼 같이 먹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아무리 북한 정권이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을 두고 볼 순 없죠. 정부가 대북 지원을 하기 힘들다면 민간 차원에서 나서면 됩니다. 

‘밥 피스 메이커’는 이를 정부에 요구하는 외침이라고 볼 수 있죠. 밥 한끼 같이 먹는다고 해서 북핵 문제나 통일이 단숨에 해결되지 않지만 민간 대북 교류의 물꼬는 틀 수 있지 않겠어요.”

 

 

그는 밥이 평화라고 굳게 믿는다. 정치, 이념과 상관없이 순수 인도주의 차원에서 적어도 굶어죽는 사람들은 없어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게 ‘북한에 보내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북한에 가서 직접 밥퍼 나눔을 하면서 남북한 민간 교류의 꽃을 피우고 싶단다.

최 목사는 “전(前) 정부부터 끊임없이 남북한 민간 교류, 대북 지원을 요청했지만 다 묵살됐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보다 큰 사회적 미션을 안고 시작하는 만큼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정치적인 이유로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일도 목사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올 8월 15일과 판문점을 다시 찾을 계획이다. 

광복절과 추석은 한반도 공통의 명절이기 때문. 그는 “밥에는 이념도 정치도 없다”면서 “밥을 나눠주는 것이야 말로 순수한 사랑 나눔 운동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처럼, 

밥퍼가 ‘꿈퍼 운동’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인터뷰는 끝났지만, “할 말이 많이 남았다”면서 기자에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최일도 목사.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상’처럼, 나눔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 목사의 눈빛은 따쓰했다. 

 

더나은미래 박민영 기자 bada@chosun.com

 

http://futurechosun.com/archives/2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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